디지털 미디어 리더십: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를 한창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다지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다지 최근의 일도 아니다. 약 7~8년 전 이야기다. 그때 미디어들이 다 같이 시작한 소위 ‘디지털 혁신’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면 꽤 놀라운 수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미디어는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내 구독 수익이 지면 및 온라인 광고 수익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하지만 어떤 미디어는 여전히 지면 위주의 기사 구성, 이에 따른 지면 광고 수익으로 간신히 버티며 암울한 미래를 전망한다.

다른 시대가 닥쳐올 때

오늘은 이 미디어들 사이에서 같은 고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중요한 요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바로 미디어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에 대해서다. 아마 지금의 미디어가 겪고 있는 문제는 미디어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겪는 문제일 것이다. 뭔가 새로운 방식이 생겨나고, 새로운 독자의 니즈가 견고히 자리잡는데 그것에 대응할 인력은 적을 수밖에 없다. 이미 하던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이루고 있으니까. 패러다임의 변화는 근본적인 취재 방식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 ‘하던 일을 잘 하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잘’ 하기는 심지어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이다.

이러한 과도기를 맞은 미디어 조직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해야 할까? 로이터 인스티튜트의 루시 큉 교수는 리더십을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미디어 조직이 진정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이에 걸맞는 의지와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큉 교수가 논문에서 제시한 디지털 미디어 리더십의 핵심 명제를 정리하고, 각각의 명제에 대해 부연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은 <Hearts and minds: Harnessing leadership, culture, and talent to really go digital> 의 챕터 1에 기반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전환기를 겪고 있는 전세계의 미디어 종사자들을 인터뷰한 연구논문이며, 여유가 된다면 일독을 권한다.

첫째. 끊임없이 생각하고 콧대는 낮춰라 (high thinking, low ego)

리더가 가진 업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하드 스킬이라고 본다면, 점점 더 소프트 스킬이 중요해지고 있다. 왜냐면 더 이상 리더가 가진 업계에 대한 지식으로 커버가 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생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았기에(훌륭한 기자이거나, 편집자이거나, 앵커였거나, 등등…) 미디어 조직의 리더가 됐지만, 디지털 전환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에 대한 지식을 지금 리더가 급작스럽게 늘려나가는 것보단 당장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아래 세대의 동료들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즉, 큉 교수는 이 일은 내가 잘 모른다는 것부터 인지하는 게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디지털 역량을 가진 조직 내 동료들을 경청하고 이끌어 나가야만 한다.

물론,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명제다. 아마 제일 어려운 명제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취재한 팩트에 대해, 그리고 그 팩트가 가질 사회적 영향에 대해 평생 자신감을 가지도록 교육받은 기자가 어떤 분야에 대해서든 ‘모른다’고 얘기하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디지털 혁신이 실패한 미디어들의 90%는 바로 이 첫째 명제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미디어 조직의 리더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기존 미디어 조직에서 행사한 제왕적 리더십을 행사하고자 하는 경우다. 특히 엄격한 상하 위계가 남아있는 전통적인 미디어 조직일수록 그러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기조차 싫어하는 경우 일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둘째. 권한을 위임하라(‘We trust you to do that’)

당신은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당신은 ‘난 이건 아는데, 이건 모르고, 모르는 건 이 사람들이 해 줄 수 있고, 난 그 사람들을 믿어’라고 말하는 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You don’t have the answers. … You have to be comfortable saying, ‘I know this, I don’t know that, and for the things that I don’t know, I have to get the people who do and trust them.’
- 동일 논문, 2p

디지털 미디어 비즈니스는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각화되고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디어 조직의 리더가 그 구조와 동작 원리를 모두 이해하기 힘들다. 생각해보자. 웹사이트에 디스플레이 광고를 걸고 이를 유지하는 일만 해도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한 시대다.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었다고 하지만, 결국 최적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선 끊임없이 디스플레이 광고의 품질과 순환을 관리하며 최적화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디스플레이 광고에 대한 지식을 리더가 전부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그 일을 담당자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일단 믿고, 이를 기반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큉 교수는 이렇게 권한을 위임했을 때 다음 세대의 리더를 길러내기도 쉬워질 거라고 조언하고 있다.

첫째 명제와 연결되는 둘째 명제 역시 편집국-광고국으로 나뉘고 단순한 세일즈 구조를 가졌던 전통적인 미디어의 산업구조에 익숙한 리더라면 굉장히 실행하기 힘든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알기에는 시간이 없다. 리더는 끊임없이 바뀌는 미디어 지형에 대비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깊게 전문화된 영역은 실무자에게 맡겨야 한다. 한 신문의 편집장이 매일의 디스플레이 광고 지표에 대한 수익분석을 진행하는 것보다 디스플레이 광고 최적화 작업에 인력을 더 투입할지, 말지에 집중해 결정을 내리는 게 낫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없다면 그때 중간관리자나 실무자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다.

셋째. 지시하지 말고 질문하라(Ask don’t tell)

통제하고 지시(command and control)하는 방식이 리더 역할을 수행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라면, 지시하지 않고 질문하는 방식은 디지털 미디어로의 전환기를 맞은 모든 리더에게 필요한 자세다. 리더는 조직 내 각 팀에서 최대한의 전문성을 이끌어내고 그들을 몰입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알맞은 방식은 그들이 잘 아는 일에 대해 자신에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지식을 기반으로 그들에게 방향을 지시할 필요가 없다.

실제 업무 속 사례를 가정해 보면 조금 더 재밌을 것이다. 약 6개월간 기획취재팀이 붙어 취재한 방대한 분량의 기사를 인터랙티브화 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이 작업을 팀원에게 위임한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어떤 비주얼과 어떤 포맷으로 기사를 인터랙티브화 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물어보고, 어떤 결과물이 나오길 원하는지 팀원의 의견을 수합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리소스를 배분하는 것이다. 이 인터랙티브 사이트가 어떤 방식으로 ‘나와야 한다’고 팀원들에게 디렉션을 줄 필요가 없다. 이미 그들은 어떤 것이 최적의 결과물인지 잘 알고 있을테니까. 무엇을 해야 해, 가 아니라 뭘 할까? 하고 팔을 걷어붙이며 함께 뛰어들고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탑 리더에서 중간관리자로, 중간관리자에서 팀원으로

그리고 리더가 이끌어가는 방향을 실제로 수행하는 중간관리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책임지게 된다. 이것은 프로덕트 관점의 조직으로 전환을 실행할 때도 벌어지는 비슷한 딜레마다. 전통적인 조직의 언론사 ‘부장’급은 기사의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직책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언론사 부장급이라면 기사의 생산 뿐만 아니라 유통, 재생산까지 신경을 쓰고 이를 위한 협업을 책임져야만 한다. 때문에 디지털 미디어 리더십에 필요한 명제로 제시한 세 가지는 비단 탑 리더 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비슷한 리소스를 가지고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리더/중간관리자가 맡은 조직은 도태될 뿐이다.

결국, 큉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의 리더십에 관한 원칙은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가 대응해야 하는 변곡점이 수도 없이 늘어난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다. 플랫폼은 어디에나 있고 독자는 24/7 아무때나 콘텐츠를 향유하러 온다. 이들의 다양한 취향과 행태에 맞추어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재발행, 재생산하고 최적의 타이밍에 이를 송신하면서도 지속적인 수익화를 고민하고 독자들의 충성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사이클은 상하관계가 뚜렷해 상명하복으로 업무가 이루어지는 조직에서는 더 이상 소화할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얘긴데, 왜 미디어만 특수한 사례인 것처럼 나누어 콕 집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미디어 조직의 구성원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도제식 훈련을 거친 엄격한 서열 구조로 콘텐츠를 고독하게 생산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기에, 지금의 미디어 조직에 필요한 것은 제왕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갖춘 채 카리스마로 내일의 1면을 결정하고 목소리를 높여 부장들, 논설위원들과 삿대질을 하며 자신의 관점을 관철하는 편집장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을 갈망하는 미디어 조직에 필요한 것은 변화에 필요한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적으로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에게 최적의 방향을 물어 이를 조직의 목표에 정렬시킬 수 있는 편집장이다.

디지털 혁신이라고 불리는 시도들을 TF나 외주로만 소화하고 그들이 ‘과연 잘 되는지 보고 결정하자’는 유보적인 태도의 리더십으로는 절대 조직의 근간을 디지털 체질로 바꿀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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