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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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에서 잘 읽히는 글을 만드는 에디팅 수칙

어떻게 보면 구시대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유투브가 범람하는 시대지만 나는 여전히 텍스트가 가진 정보전달력을 사랑하고 신뢰한다. <핀치>의 콘텐츠를 텍스트로 한정한 것은 매우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비디오는 잘 알지도 못하고 잘 하지도 못한다. 대신 나는 좋은 텍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할 기회가 있었고,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잘 읽히는 텍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트래픽의 70% 이상이 모바일로 유입되는 미디어에서 일하다 보면 독자들이 이 콘텐츠를 어떻게 읽으리라는 일종의 ‘감’이 생긴다. 오늘은 그 ‘감’이라고 퉁치던 것들을 말로 풀어보려고 한다.

첫째. 글의 길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라

모바일 콘텐츠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은 롱폼 콘텐츠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편견이다. 웹소설의 약진을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긴 텍스트에 대한 거부감이 편집자들의 생각보다 없다. 긴 텍스트에 대한 거부감을 으레 상정하고 맥락이 이어지는 콘텐츠를 강박적으로 끊어서 발행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는데, 오히려 독자의 몰입을 해칠 뿐이다. 독자는 여러 개의 시리즈 기사로 이어지는 페이지 여러개를 넘나드느니, 몰입이 되었을 때 한번에 스크롤을 내려 콘텐츠를 즐기길 원한다. 이는 언어권을 초월하는 오랜 편견 중 하나인데 여러 메이저 언론사가 극단적으로 긴 콘텐츠(이른바 ‘스압’이 엄청난 콘텐츠들 말이다)를 연이어 생산하며 편견에 반박하는 실험을 한지는 꽤 오래 됐다. 지면 등의 이슈로 시리즈 기사를 끊어서 발행하였다고 해도 온라인에 업로드할 때는 하나의 콘텐츠로 이어붙이는 옵션을 고려하자. 재미만 있으면 길이는 상관 없다.

둘째. 하지만 문장의 길이는 강박을 가져라

내가 글쓴이가 되었을 때 그다지 훌륭하게 지키고 있는 수칙은 아니라고 미리 고백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문장이 길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편집자는 그것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 특히 모바일 환경을 생각했을 때 그렇다. 데스크탑(가로 1200px 정도로 늘어지는) 기준으로 두 줄 정도 되는 문장은 데스크탑 기준에서는 넘겨도 읽는데 무리가 없지만 모바일에서는 그 두 줄 짜리 문장이 네 줄, 다섯 줄이 된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접하는 기기의 스펙이 천차만별인 모바일 환경의 특성을 고려해, 가장 열악한 환경을 가정하라. 이렇게 되면 모바일에서 웹사이트의 기사를 읽을 때 가로폭은 320px 내외다. 글자 크기가 줄어드는 걸 고려해도 한 줄에 많아봐야 열 단어가 들어간다. 긴 문장이 아무리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들, 몇 번이고 줄이 바뀌어 잘리면 흐름을 놓쳐버리기 쉬워진다. 그럴 확률이 모바일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나눌 수 있는 문장은 모두 나눈다. 적극적인 편집이 필요하다. 모바일 문법에 맞게 글을 편집하는 일은 사실상 적극적인 재창조에 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한 문단의 길이는 열 문장 안으로

둘째 수칙과 이어지는 이야기다. 모바일 기기에서는 스크린 하나에 약 스무 줄 정도가 노출된다. 문장 하나가 한 줄~두 줄 정도를 차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열 문장 이내로 문단 하나를 끊어야 한 단락이 안전하게 한 화면으로 들어간다. 한 화면을 넘어가는 문단을 제공하면 독자의 피로도가 증가해 완독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와 정반대로 한 문단에 문장이 겨우 한두 개 들어가는 수준의 단락도 모바일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다. 너무 없어 보인다고 표현해야 할까. 적당한 길이의 문단이 반복되는 게 모바일 시점에서는 가장 안정적이다. 강조를 위해 중간중간 한 문장을 떨어뜨리고 싶다면 위아래 공간을 잘 비운 인용구 포맷을 활용하거나, 자사 CMS에서 그러한 포맷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두 줄 이상의 위/아래 엔터를 추천한다. 데스크탑에서는 매우 비어 보이겠지만 모바일에서는 적절한 정도다. (사실 그래서 reponsive하게 사이즈가 조정되는 인용구 스타일이 있는 경우가 제일 좋다.)

넷째. 고난이도의 어휘/전문용어는 가급적 수정하라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꼭 그 단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려운 말’들은 모두 풀어쓰거나 바꾸어 쓰는 것이 좋다. 독자의 지적 수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단지 이러한 단어를 사용한 후 필연적으로 붙게 되는 (괄호) 혹은 각주식 설명의 모바일 가독성이 끔찍하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를 설명을 위해 읊는다면 그것을 함부로 축약할 수도 없어 길어지기 마련이고, 원어가 외국어인 단어들은 원어 표기까지 붙여줘야 한다. 그러면 이 설명이란 것들은 대부분 문장도 아닌 긴 단어의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사용된 어휘에 대한 설명이 필자의 본문에서 바로 이어진다면 크게 상관이 없지만, 이 경우에도 설명 문장이 길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편집에 신경을 제법 써야 한다.

다섯째. 이미지 남용을 줄여라

첫째 수칙처럼 다섯째 수칙도 흔한 편견에서 출발한다. 모바일에서는 큼직한 이미지가 많이 들어간 글이 잘 읽힌다고들 생각하니, 넣을 수 있는 곳마다 별별 큼지막한 이미지를 다 넣어보는 관행이 있다. (적어도 있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훌륭한 편집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지 말자. 관련성이 떨어지는 이미지나 동영상을 문단 중간중간에 자주 삽입할 경우 독자의 몰입을 해칠 뿐이다. 추천하는 이미지의 간격은 세~네 문단당 하나다. 이보다 이미지가 많으면 이미지가 화면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꽤 큰 모바일 기기의 특성상 텍스트의 정보전달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반대로 이보다 이미지가 적으면 텍스트만 빽빽하게 계속되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관련 있는 이미지를 넣을 것이 없다면 중제와 인용구 등을 더욱 빈번하게 뽑을지언정, 성의 없는 이미지를 넣지는 말라. 특히 이미지 소스의 유료 구입 등에 매우 보수적이거나 그럴 형편이 안 되는 미디어의 경우 이 자리에 퀄리티가 떨어지는 무료 이미지를 자주 넣는데 누가 봐도 없어보이는 콘텐츠로 가는 지름길이다.

성의없는 이미지보다 더 나쁜 이미지라면 역시 생각없는 이미지의 삽입인데, 그 이유가 무지이든 악의이든 제대로 된 이미지를 고르고 넣을 줄 아는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잊지 말자. 글에 어울리면서 남을 공격하지 않는, 주의 깊은 이미지를 제작하거나 편집하는 방법은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여섯째. 정말 강조할 부분만 강조하라

<Vox>를 즐겨 보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Vox>는 본인들의 아이덴티티 컬러이기도 한 밝은 노랑색을 사용해 형광펜을 긋듯 텍스트를 칠한다. 이조차도 한 문단에 두 번 이상이 들어가 있으면 시선이 분산된다. 그러니 각기 다른 스타일(볼드, 이탤릭, 언더라인, 백그라운드 컬러, 텍스트 컬러 등)을 적용해 여기저기를 다른 방식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텍스트가 데스크탑/모바일 어디서든 얼마나 더럽게 보일 수 있는지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상상에 맡기겠다. 포털 등에 원고를 송고하면 이 스타일 지정이 거의 날아가긴 하지만, 자체 사이트에 콘텐츠를 발행하는 경우 너무 많은 스타일의 자유를 추구하지 말자. 가급적 텍스트 스타일 변주의 최대치는 볼드 정도로 두는 것이 좋다. 색깔로 강조, 혹은 편집자주 등을 삽입할 때는 전체 텍스트에서 한 가지의 컬러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요약: 이미 작디 작은 독자의 몰입을 어떻게 방해하지 않을 것인가

모바일 환경에서 텍스트를 소비하는 독자들은 대부분 콘텐츠에 큰 정성을 들여 집중해줄 의사가 없다. 정확히는 시간을 때우는 용으로 가볍게 텍스트를 읽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를테면, 정작 보고 싶은 영상은 넷플릭스에 쌓여 있지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끊기는 와이파이 때문에 잠시 기사나 읽기로 한다, 같은 시나리오다. 혹은 자기 전에 영상을 보기엔 너무 시끄러우니 적당히 스크롤이나 내리다 잠들기 위해 텍스트를 읽는 시나리오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다.

독자의 몰입을 증가시키는 핵심 요소가 콘텐츠의 내용 자체라면,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핵심 요소는 콘텐츠의 편집이다. 최대한 모바일 기기에서 읽기 편하도록, 거슬리지 않도록, 신경쓰이지 않도록 물 흐르듯 마무리한 편집이 최적의 편집인 셈이다. 이 편집에 조금만 더 신경쓰면 훨씬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족. 이것은 모바일 시대에 맞는 ‘글쓰기 수칙’이 아니다. ‘에디팅 수칙’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글을 일단 쓸 때는 쭉 쓰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맞은 형태로 아름답게 다듬는 건 편집자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휘갈겼으면 한다. 물론 스스로 글을 쓰고 퇴고하는 입장까지 되면 글을 쓸 때도 ‘편집자 모드’가 발동할 수밖에 없지만, 이왕이면 글을 다 쓴 후에 스스로 편집자의 시선에서 글을 여러 번 검토하는 게 마음 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