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미디어를 어떻게 바꾸었(고 바꾸지 않았)을까?

COVID-19(아래 코로나)가 발발한지 1년, 이제 코로나는 이상현상이 아니라 적응해야만 하는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가 촉발한 언택트 시대에 맞추어 어떻게 진화하냐에 따라 미디어 업계의 성과도 크게 갈렸다. 오늘은 로이터 인스티튜트의 <Journalism, Media and Technology Trends and Predictions 2021>리포트에 기반해 코로나가 디지털 미디어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트렌드를 가속화시킬지 짚어 본다.


첫째. 언택트 콘텐츠 생산

당연하게도 가장 명백한 변화는 미디어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재택 근무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로이터 인스티튜트의 리포트에 따르면 기존에 재택/원격 근무에 회의적이었던 저널리스트들도 ‘의외로’ 이 재택 근무가 주는 유연성을 선호했다고 한다. <El Diario>의 부편집장인 마리아 라미레즈는 “우리는 3월부터 전면 원격근무에 돌입했고, 지금까지 쭉 그렇게 일하고 있다”며 “우리는 낡은 방식의 뉴스룸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 코로나는 원격 근무 도입을 망설이던 이들에게까지 재택 근무 도입을 몰아붙였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셈이다.

다만 업무 자체의 효율성은 온라인 협업 툴로 인해 소폭 증가하거나 그대로라고 보는 이들이 많은 반면, 정신 건강과 창의성 증진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밝힌 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전면 원격근무보다는 원격과 오피스 근무를 효율적으로 결합한 근무 모델이 점차 차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코로나 발발로 대면 취재조차 어려워진 상황에서 저널리스트들은 비대면으로 취재하는 여러 경로를 시도했다. ABC 뉴스와 BBC 뉴스는 기자들이 직접 움직이기 어려운 지역에서 취재해야 할 사안이 있을 경우 커뮤니티 리포터, 즉 독자 참여 취재 모델을 작년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도저히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찾아낼지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저널리즘 콘텐츠를 생산할 때 핵심 가치로 여겨졌던 현장성에도 의문 부호가 따라붙기 시작하는 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더 이상 기자가 발로 뛰는 직업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사의 가치는 어떤 부분에서 고유한지 점검과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저널리즘의 가치 복원

저널리스트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의 영향 중 하나는 독자들이 난무하는 가짜 뉴스와 정보 속에서 ‘진짜 믿을 만한’ 정보를 찾아 언론사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라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Helsingin Sanomat>의 편집장 Kaius Niemi는 지금을 ‘뉴스의 르네상스’라고 표현한다. 저널리즘 조직만이 실현할 수 있는 체계적인 팩트체킹을 기반으로 코로나와 그 여파를 명확히 설명하는 콘텐츠는 그야말로 풍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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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염병의 유행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가 인력 및 취재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언론사들은 이 시기를 제대로 ‘탔다’. 의료전문기자나 해설가가 있는 미디어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고 신뢰성 높은 정보를 전파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는 대신 공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도 언론사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코로나를 제대로 다룬 공공 미디어는 이번 기회에 존재 가치를 톡톡히 인지시키기도 했다. BBC의 사례가 그렇다. BBC는 올해 상반기에 큰 폭의 트래픽 증가를 보이며, 결국 2020년 7월경 역대 월간 방문자수 기록을 경신했다. 코로나 사태는 견고한 팩트와 전문성의 추구가 독자의 신뢰로 이어지고, 독자의 신뢰는 결국 언론사의 생존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다는 전통적인 이론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2021년에는 ‘잘 할 수 있는 일을 더욱 잘 하려는’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명확한 사실 전달을 통한 가짜 뉴스 배제, 전문 영역에 해당하는 정보를 독자에게 소화시키는 설명형 콘텐츠(explained), 이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 콘텐츠의 적절한 시각화가 그것이다.

셋째. 유료 콘텐츠의 가속화

코로나는 미디어 콘텐츠의 유료화를 부추겼다. 구독경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Zuora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에 두번째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구독경제 부문이 미디어 퍼블리싱이다. (첫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넷플릭스 등의 비디오 스트리밍이다.) Zuora의 <Subscription impact report>에 따르면, 2020년 3~5월동안 뉴스 구독은 2019년 동일 기간 대비 110% 늘어났다. 뉴욕타임즈만 해도 2020년에 백만 명이 넘는 신규 구독자를 확보했다. 가디언은 코로나 사태 이후 정기구독 백만 명을 달성했고, 앱을 통한 유료 구독이 60% 증가했다.

다만 로이터 인스티튜트의 보고서에서 지속적으로 밝힌 것처럼 대부분의 독자들은 전국구 규모의,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 한두 개만 구독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유료 구독의 증가는 대형 미디어 브랜드에만 해당하는 현상이며 중소규모의 지역 미디어는 운영 규모를 축소하는 일도 빈번했다. 하지만 각국의 신흥 디지털 미디어들은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에 알맞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점에서 뉴스 콘텐츠와 유료구독상품을 제공했고, 그 결과는 상당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Zetland의 편집장인 Lea Korsgaard는 이렇게 말한다.

뉴스를 돈 내고 구독하려는 의지라는 게 존재하긴 할까요? 전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지만 편리함,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설명해 주는 콘텐츠와 이를 통해 느끼는 유대감, 그리고 소속감에 돈을 내려는 의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구독경제에 대한 의견은 현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제법 양극화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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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인스티튜트의 조사에 따르면 미디어 업계 리더의 51%가 결국 구독은 모든 미디어의 수익모델이 될 것이라고 보는 반면, 41%가 소수의 미디어에게만 수익모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다만 몇몇 대규모 미디어에서만 유료구독이 성공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점점 더 많은 미디어, 특히 중소규모의 디지털 네이티브 미디어는 유료구독제를 도드라지게 시도하고 있다.

2021년은 ‘코로나 범프’로 인해 훌쩍 뛰어오른 구독자들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이를 위해 미디어는 제공하는 구독 상품을 상품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리텐션을 위한 제품 전략을 적극적으로 이식할 필요가 있다.

넷째. E-commerce와 라이브 이벤트를 통한 수익 다각화

미디어의 광고 수익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플랫폼 의존성이 증가하면서 광고 수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대다수의 미디어 종사자 역시 미디어가 안정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광고 수익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 광고와 유료구독 외의 모델로 수익화를 시도하는 언론사들 중 몇몇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영국의 <The Independent>는 4년 전에 종이신문 생산을 중단했다. 그리고 디지털 광고 뿐만 아니라 e-커머스, 협찬 수익, 유료구독 및 기부 모델에 집중했다. <The Independent>는 이를 통해 확보한 수익으로 스페인 에디션으로 커버리지를 확장하고 비디오 콘텐츠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버티컬 브랜드를 통한 상품 추천 콘텐츠로 안정적인 수익을 벌어들이는 곳은 이미 생각보다 많다. 뉴욕타임즈의 <Wirecutter>, 뉴욕매거진과 복스 미디어가 만든 <the Strategist>, <IndyBest>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견고한 브랜딩을 통해 아예 리테일과 제조업 분야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BuzzFeed의 버티컬 브랜드 Tasty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대규모의 현장 이벤트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재빠르게 적응한 온라인 이벤트를 통해서도 미디어는 수익을 확보하고 있다. <The Economist>는 필자들과의 공개 QnA를 정기 라이브 이벤트로 제공하는데, 이 이벤트는 부분 유료다. 온라인 이벤트를 주최하며 쌓은 노하우는 아이디어와 결합해 수익으로 이어진다. 구독자만 참여할 수 있었던 빌 게이츠와의 라이브 인터뷰에는 27,000명이 참석했다.


다섯째. 더욱 대담한 실험, 프로덕트 관점으로의 이동

코로나 사태는 미디어가 점진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을 전면적으로 실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성공적인 경험을 얻은 미디어들은 그동안 다소 급진적이라고 여겨지던 아이디어들까지 도전해볼 기회를 얻는다. 성공적인 원격근무는 점진적으로 미디어 조직의 관료제적인 성격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독자 분석, 수익다각화, 원격 취재와 콘텐츠 생산 등의 실험을 가속화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미디어가 스스로를 브랜드로 인지하고, 브랜드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프로덕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디어에서는 다소 부차적이라고 여겨왔던 유저 경험을 크게 개선하고 독자와 멤버십의 증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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