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글쓰기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되도 않는 영어를 끙끙거리며 붙잡고 사업 소개서를 쓰고 있던 지지난 주쯤의 일이다. 구글 닥스에 ‘Our product aims to’… 를 쓰자 연한 회색 글씨로 다음에 내가 입력할만한 인용구 덩어리가 제시됐다.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매우 적절한 제안이었다. 탭키만 누르면 구글이 제안해 준 인용구를 바로바로 입력할 수 있었다.

내친 김에 이게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었다. 종종 스마트폰으로 해보는 자동완성으로 글쓰기와 비슷한 실험인 셈이다. 탭키만 연발했다. 1분만에 제법 그럴듯한 사업 소개서의 첫 문단이 완성됐다. 상세한 내용을 작성해야 하는 단락에 다다라서는 자동완성의 도움이 크게 유효하지 않았지만, 단어 수준에서는 여전히 좋은 제안들이 있었다. 그 인용구를 곧이곧대로 쓰진 않았지만 아, 이 말은 영어로 이렇게 쓰곤 했었지 싶은 단어들이 눈 앞에 떠다니니 단어를 골라내기가 훨씬 쉬웠다.

인공지능은 글을 쓰고 다듬는 사람의 일을 어디까지 대신해 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정말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할까? 내 일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공포에 질린 얼굴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 스스로 묻어두고 있던 질문들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그 질문들을 마주해 보았다. 주관적인 경험치로 인공지능이 커버할 수 있다는 글쓰기와 에디팅에 관한 기능의 유용함 점수를 10점 만점으로 매겨봤다.

오탈자 잡아내기: 6/10

오탈자는 아무리 글을 몇 번씩 봐도 볼 때마다 새로 눈에 띈다. 자동 오탈자 체크를 돌려서 일단 오탈자를 한 번 검사하는 게 굉장히 빠르고, 편하고, 번거롭지도 않은 일 같지만 기계가 잡아낸 오탈자를 전부 알아서 고쳐버리게 하는 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게 오탈자 검사는 대부분의 고유명사를 오류로 인식하고, 글의 분야에 입각한 예외적 허용도 오류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눈이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빨간 줄을 그어주는 건 언제 어디서나 고마운 기능인 건 맞다. 자동 형광펜 같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견딜만 하다. 의외로,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홀로서기에는 까다로운 영역이다.

맞춤법 교정하기: 8/10 (한국어의 경우, 5/10)

맞춤법 교정기능은 언어에 따라 활용성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그 언어에 능숙하고, 어느 수준으로 언어를 활용하고자 하는지에 따라서도 활용도가 갈린다. 물론 쌓인 데이터의 양에 따른 맞춤법 교정 인공지능의 수준도 차이가 큰다.

나는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영어를 업무용으로 작문하는 경우가 잦다. 그리고 내 수준에선 구글이 구글 독스, 혹은 지메일 등에서 영어를 입력할 때 확인해 주는 맞춤법이 매우 편리하다. 특히 원어민이 아닌 경우 틀리기 쉬운 관사나, 헷갈리기 쉬운 주어-동사의 단수/복수 일치형 등을 꼼꼼하게 잡아낸다고 느꼈다. 물론 주관적인 경험이다. 문장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크게 도움이 되진 못한다.

반면에 한국어는 내가 원어민인 언어고 나는 한국어로 읽고 쓰는 일을 한동안 직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한국어로 쓰는 글은 내용도 영어로 쓰는 글보다 훨씬 복잡하고 문장 구조도 당연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태생적인 언어가 가지는 차이를 고려한다 해도 말이다. 한국어를 쓸 때는 자동 맞춤법 교정이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유용한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한국어는 맥락에 따라 알맞게 써야 하는 단어와 맞춤법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전후맥락을 읽지 않으면 올바른 교정 제안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같은 자동 교정 사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5점 정도를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가끔씩 정말 기본적인 맞춤법을 헷갈릴 때 인공지능이 틀린 부분을 짚고 넘어ㄹ가기 때문이다.

꼭 언어별로 구분하지 않더라도, 자동 맞춤법 교정은 단순한 문장 구조를 가질수록 잘 작동한다. 그래서 오히려 문장을 짧고 단순하게 써야 하는 정보성 뉴스의 경우 자동 맞춤법 교정이 꽤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사용하는 구절이나 단어가 관습화되어있을수록 그렇다. 저널리스트들의 맞춤법을 회사에서 나서서 교육할 리소스가 없다면 차라리 단문 기사라도 맞춤법을 자동교정하고 내보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더 이상 포털에서 기사를 읽으며 되/돼, 안/않, 드러냈다를 들어냈다로 쓰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맞춤법 실수를 보고 고통에 빠지고 싶지 않다.)

자동완성 글쓰기: 9/10

반면 기계가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쓰는 수준의 자동완성 글쓰기에 대해선 아직 회의적인 시선도 있지만, 자동완성 글쓰기야말로 인공지능이 톡톡히 제 몫을 해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예를 들어 일기예보같이 완전히 형식이 고정되어 있는 기사는 사람이 쓰는 것보다 형식을 고정시킨 채 매일의 일기예보 데이터만 보내 인공지능이 쓰는 경우가 훨씬 정확하고 빠르다.

그리고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관습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자동완성 글쓰기가 인간의 글쓰기를 모방하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툭하면 주고받는 업무 메일을 생각해보라. 메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이 주요 업무인 경우 거의 매크로를 작성해 쓰는데, 이것도 일종의 수동 자동완성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매크로를 작성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해당 언어를 사용하면서 이 목적의 이 문장에 이 단어를 배치한다는 것을 기계가 학습하기만 하면, 대다수가 따르는 결과를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자동완성은 완전히 형식이 고정된 일기예보 같은 사례 뿐만 아니라 격식을 갖춘 편지/메일, 제안서, 연구보고서 등을 쓸 때 상당히 도움이 된다.

문학적 글쓰기의 경우, 자동완성이 쓸모없을 뿐더러 모욕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틀에 박힌 단어나 어절을 제안해준다면 이를 피해갈 수 있어서 도움이 되고, 오히려 다수가 쓰지 않는 단어나 어절을 끌어당겨 의외의 제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 물론 문학적 글쓰기의 경우 자동완성은 어느 정도의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글의 내용에 맥락과 성찰을 부여하는 건 오로지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문장 다듬기: 1/10(미래의 희망찬 가능성에 1점 .)

인간이 써내려간 글을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작업은 아직까지 인간만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에디터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에디터의 핵심 역할인 문장 다듬기를 쏙 빼놓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정/교열만 보는 역할이라면 가까운 미래에 기계가 충분히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기계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기계가 제안하는 교정/교열의 정확도는 날이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의 의미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단어를 바꾸거나, 줄이거나, 더하는 작업은 글의 맥락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게다가 문장을 다듬는 작업은 정답도 없고, 정답에 가까운 ‘다수 케이스’도 없다. 그래서 오탈자 교정, 맞춤법 교정처럼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기 힘들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것

막상 인공지능과 일상을 함께 나누는 시대에 살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글쓰기를 보완할 수는 있어도 전부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러다이트마냥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가는 글쓰기 관련 인공지능을 때려부수려 하거나, 반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인공지능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조금씩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어떤 글쓰기가 ‘인간의 글쓰기’인지 재정의하는 작업이 글을 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특히 이것을 저널리즘의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꽤 분명한 결론이 나온다. 보도자료를 옮겨 짜집기하거나 통신사 기사를 복붙하는 기사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곧 인공지능이 다 해줄 수 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수 없는,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을 만큼 신선한 내용과 구조를 담은 기사를 고민하고 그것을 완성도 높게 만들어내는 게 ‘인간 기자’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리소스 부족을 이유로 새로운 시도를 미뤄 왔다면 이제는 더 이상 미룰 핑계가 없어진 셈이다. 미래지향적인 콘텐츠의 생산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에게 주도권을 가장 먼저 잃는 분야는 관습적인 언어와 저맥락 콘텐츠만을 반복생산하는 현재의 저널리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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