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미국 대선 보도가 우리에게 남긴 것: 데이터로 충분하다

한국의 선거 보도 철이 다가오면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독 많은 주목을 받는다. 대체로 그 화두란, ‘이번 CG는 몇 개월(혹은 몇 년) 전부터 공을 들여 만든 것이며 이를 위해 이러한 리소스를 썼다는 루머들이다. 처음에는 다소 조잡해 보이는 퀄리티에서 출발한 방송사들의 선거철 CG는 해마다 수준이 증가해 최근엔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용을 타고 날아다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정치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다니고, 용을 타고, 칼을 빼들고, 권투 링 위에서 싸우는 연출을 보다 보면 원래 선거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조차도 이 장면을 밈(meme)처럼 소비하며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선거 보도 방식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적절한 선거 보도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다.

선거 결과를 가능한 한 간단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몇천만, 몇억 명이 한 번에 의사를 표명하는 현대 민주주의는 당연히 엄청나게 복잡한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으나 그만큼 큰 영향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안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없는 청중에게 이 내용을 소화해 송신하는 게 미디어의 역할이고, 이를 위해 미디어들은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 왔다. 2020년의 선거 보도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떤 미디어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것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미국의 대형 언론사라면 어느 곳이나 선거에 관한 ‘라이브 업데이트’ 웹페이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5분, 10분 단위로 각 주와 카운티에 관한 세세한 소식까지 전해주는 이 페이지에는 오히려 시선이 덜 갔다. 선거에 정말 관심이 깊고, 각 지역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는 미국인 혹은 전문가에게는 유용할 정보겠지만 그래서 누가 이기고 있는지만 궁금한 나에게는 딱히 관련성이 높지 않았다. 아마도 대선 레이스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청중은 전문가보다 나와 비슷한 입장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건 개표 전엔 선거 결과 예측, 개표 시작 후엔 선거 결과 요약 페이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약 쪽의 실시간 업데이트가 용이한 건 비디오보다 텍스트/웹 페이지 매체였다. 물론 선거에 관심있는 유권자가 계속해서 한 채널의, 혹은 여러 채널의 방송을 틀어 놓는다면 속속 업데이트되는 개별 결과야 훨씬 빠르게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상 매체에서는 결과 요약을 바로바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웹 미디어로의 전환은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경쟁구도를 제공한다. 청중에게 그 언론사가 원래 방송사였는지, 신문사였는지, 전국 규모의 방송사인지, 소규모 로컬 신문인지, 라디오 뉴스 쇼인지, 통신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모두 웹에서 청중이 접근할 수 있는 웹 페이지에 정보를 최대한 신속하게 제공함으로써 경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정보에 따른 최적화된 포맷을 적절하게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AP의 대선 결과 인터랙티브.

AP의 대선 결과 인터랙티브.

AP는 이번 미국 선거 보도를 커버하면서 통신사의 의미를 확장했다. 각종 뉴스 매체에게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일종의 B2B 미디어답게 미국 선거 결과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인터랙티브를 iFrame으로 제작해 전세계의 고객들에게 제공했다. 미국 대선에 큰 리소스를 투자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결과를 커버하긴 해야 하는 유수의 외국 미디어들이 AP가 제공한 지도를 자신의 웹사이트에 임베드했다. 임베드하기만 하면 지원하는 언어로 알아서 관련 내용이 번역되기 때문에(i18n의 좋은 사례) 이 인터랙티브를 사용하는 AP의 고객 언론사들은 선거 결과 추적에 투입해야 하는 리소스가 거의 0에 가깝다. (이에 대해 분석하는 보도는 별도로 치고.)

ABC뉴스는 통계분석전문매체 FiveThirtyEight과 함께 대선 결과를 예측하고 업데이트했다. 웹 기반 미디어와 방송사가 거리낌없이 협업한다. 극도로 실용주의적인 자세다. 언론사에서 들여야 하는 리소스를 대폭 감축하면서 고도로 자동화된 선거 결과 추적이 가능하다.

FiveThirfyEight의 선거 결과 예측 페이지. 예측 페이지는 예측답게 개표 전 종료되었고, 이후에 접속하면 라이브 업데이트 쪽을 봐달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FiveThirfyEight의 선거 결과 예측 페이지. 예측 페이지는 예측답게 개표 전 종료되었고, 이후에 접속하면 라이브 업데이트 쪽을 봐달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드는 리소스와는 상관없이 선거를 전력을 다해 커버하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 혁신에 앞서온 NYT와 WP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두 신문사가 트럼프에게 취하는 스탠스는 같지만 선거를 커버하는 세세한 톤은 굉장히 다르다는 게 흥미로운 점 중 하나였는데, NYT는 지난 선거부터 밀어온 ‘scale’(계기판을 닮은 차트)를 활용해 청중에게 훨씬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이해를 도왔다면 WP는 실시간 개표 현황과 이에 따른 예측치를 칼처럼 업데이트하면서 지도와 수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선거를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중요한 결과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메인 페이지의 헤드라인을 교체해 현 상황의 ‘한줄 요약’을 꾸준히 제공한다.

두 미디어가 모두 3, 4년전부터 꾸준히 그래왔듯 현장에 영상 취재 인력을 파견하고 별도의 스튜디오를 차려 생중계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신문사’로만 한정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WP의 개표 기간 메인은 이런 식이다. 맨 위의 한 줄만 읽어도 대선 레이스의 현황을 알 수 있다.

WP의 개표 기간 메인은 이런 식이다. 맨 위의 한 줄만 읽어도 대선 레이스의 현황을 알 수 있다.

신문사든, 방송사든 미국 선거를 커버한 미국의 언론사들은 기본적으로 실시간성을 탑재하고 있다. 차트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건 당연한 이야기고, 라이브 업데이트 피드가 어느 언론사나 존재한다. 한국의 선거 보도를 팔로우 할 때 발생하는 괴리감은 아마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유추해 본다. 웹사이트에는 데이터를 추가하면 알아서 업데이트되는 지도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로 하나하나 그려서 색을 입히고 고정된 이미지로 만들어버린 지도만 넘쳐난다. 이 점에선 신문사나 방송사나 별 차이가 없다. 비어버린 데이터와 실시간 추적의 자리에 CG를 채워넣는 게 방송사가 선택한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에서 실시간 개표현황에 따른 인터랙티브 업데이트는 총선, 대선 때마다 언론사보다는 개개인/프로젝트 단위로 산발적으로 훌륭한 결과가 나온다는 게 참 모순적이다.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데이터를 손쉽게 추적하며 내 눈 앞에서 경합주의 색이 뒤집어지고, 표차가 점점 더 좁아지거나 커지는 경험은 충분히 ‘재밌다’.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고 청중을 집중시키는 방법은 생각보다 여러가지가 있으며, 꼭 화려한 포장을 거치는 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모바일/데스크탑 웹 채널이 뉴스를 접하는 주요 채널인 GenZ를 자사 콘텐츠의 소비자로 붙잡고 싶은 언론사라면 선거 보도는 재미없으니, 뭔가 ‘눈요기’할 거리를 주어야 한다는 통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재미없고 복잡해 보이는 내용도 재밌고 간단하게 요약해서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요약의 기술이란, 정보에 딱 맞는 적절한 포맷을 선택하는 노하우일 것이다. 결국 그것이 사회의 숙의를 증가시킨다는 언론의 핵심 역할에도 부합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선거가 재미있는 유흥거리처럼 포장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로 비춰져야 하지 않을까.

시각적으로 화려하지 않은 선거보도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가정하지 말았으면 한다. 게으른 것은 청중이 아니라 데이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은 미디어다. 데이터로 충분하다. 콘텐츠 포맷에 대한 고민을 멈추는 순간, 청중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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