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카카오, 구글은 미디어의 적인가

기승전포털. 한국 기성 언론에서 일하는 관계자들과 디지털 혁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등장하는 패턴 중 하나다. 뭘 해봐도 포털 때문에 안 된다는 게 요지다. 새로운 포맷의 기사를 도입하고 싶어도 포털에 송고하면 다 깨지니 소용이 없다거나 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고 싶어도 포털에서 이미 콘텐츠를 다 보는데 어떤 식으로 제한을 할 수 있겠냐거나, 등등.

콘텐츠 어그리게이터와 뉴스 미디어를 아우르는 콘텐츠 생산자와의 끊임없는 갈등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다수의 언론사들이 연합해 구글에게 정당한 사용료를 내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구글은 그 결과로 어제 결국 프랑스 매체들과 저작권 계약을 체결했다.

양질의 콘텐츠를 검색 결과나 뉴스피드에 제공해야 하는 콘텐츠 어그리게이터와 그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콘텐츠 생산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굉장히 긴밀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탈 네이버’나 ‘탈 구글’을 외치며 뉴스 어그리게이터를 통하지 않고 콘텐츠를 널리 퍼뜨리는 방법을 고민한대도, 매일 종이신문을 받아보거나, 텔레비전을 하루 종일 틀어놓는 청중이 점점 소수가 되어가는 시대다. 즉, 콘텐츠는 어그리게이터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없다. 오늘은 뉴스 어그리게이터와 미디어가 어떻게 윈-윈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오만과 편견

미디어 비즈니스가 겪고 있는 장기적인 위기 -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허우적거리는 - 는 땩히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의 시작은 미디어의 오만으로부터 왔다는 점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처음 뉴스 어그리게이터가 등장했을 때 수많은 콘텐츠를 한 곳에서 모아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을 미디어 비즈니스가 대체로 무시한 것도 사실이니까. 구시대적 의미의 구독경제(신문 구독, 방송 시청과 같은)가 계속될 거라고 믿었던 셈이다. 그래서 콘텐츠를 어그리게이터에게 제공할 때 어떤 방식으로, 어느 규모로, 어느 선까지, 어떤 대가와 함께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어그리게이터의 힘을 나중에 깨달은 미디어들은 이미 주도권을 쥔 어그리게이터에 ‘대항’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아마 시작이 상당히 어그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콘텐츠 어그리게이터의 영향력이 실체화된 이후, 그리고 다수의 청중이 콘텐츠 어그리게이터에게로 이동한 이후 미디어 업계는 대체로 이 어그리게이터들을 적대했다. 그러면서도 콘텐츠 공급을 끊진 못했다. 어쨌거나 청중은 전부 거기에 있으니. 편견이 쌓인 과정이다. ‘우리는 죽어라 고생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넘겨주는데, 저쪽은 앉아서 돈을 버네.’ 재주는 생산자가 부리고 수익은 플랫폼이 갈취한다는 디지털 시대의 클리셰 중 하나다. 사실 콘텐츠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플랫폼만의 리소스가 들어가는 게 당연한데도 말이다. (물론 이를 근거로 어그리게이터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동업자(희망)
불편하게 엉킨 관계(현실)

결과적으로 미디어와 콘텐츠 어그리게이터는 서로가 없으면 자생이 불가능한 관계이면서도, 서로를 상당히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미디어와 어그리게이터는 서로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누적시켜 왔다.

구글, 카카오, 네이버, 어디 할 것 없이 어그리게이터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경로를 개척하거나 콘텐츠를 직접 발굴하며 기존 공급자의 지분을 줄이려고 애쓴다. 반면에 미디어는 이제 다양한 어그리게이터를 탐색해 각 어그리게이터의 의존도를 낮출 뿐만 아니라, 접근성을 재정비하면서 (자체 앱 출시, 자체 웹사이트 개편, 뉴스레터 등등) 어그리게이터로부터 벗어나 청중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

누가 무엇을 해야 관계가 개선될까?

미디어 비즈니스와 어그리게이터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법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도될테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편한 동거 상황을 개선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어그리게이터

인정해야 한다. 콘텐츠 어그리게이터도 결국 양질의 콘텐츠가 없을수록 괴롭다는 것을. 사용자가 원하는 품질의 콘텐츠를 알맞게 대령하지 못하는 어그리게이터에게선 결국 사용자가 떠날 것이다. 액션으로는 대략 이런 것들을 제시해볼 수 있겠다.

  • 콘텐츠 집약을 통한 수익을 가능한 한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하게 분배한다. 공정하게라 함은, 생산자가 언제나 유통자보다는 많은 이익을 거둬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 어뷰징, 복붙, 본문은 없고 제목만 달랑 달린 속보 등 단순한 장사를 위한 저품질 콘텐츠는 배제한다. 그런 콘텐츠를 걸러내지 않으면서 (장사가 잘 되니까) 그것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미디어 생산자를 탓해봤자 별 소용은 없다. 어그리게이션의 품질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 기술 표준을 미디어와 함께 논의해 결정하고, 이 표준을 지킬 수 있는 기술력을 지원한다. 나라마다 몇몇 대규모 언론사를 제외하면 날로 발전하는 웹 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미디어는 많지 않다.

미디어

마찬가지로, 인정해야 한다. 콘텐츠 생산자도 콘텐츠 어그리게이터가 없다면 콘텐츠를 널리 퍼뜨리는 창구를 잃는 셈이다. 청중이 없으면 콘텐츠는 죽는다. 비물질적인 가치를 따져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죽는다. (광고 수익도, 구독 수익도 거두지 못할 테니까.) 가능한 액션은 다음과 같다.

  • 기술적인 진보를 위한 최소한의 환경을 구축한다. 허가를 얻은 어그리게이터들이 손쉽게 콘텐츠를 ‘퍼나를’ 수 있도록 기술 표준을 맞출 수 있어야 하고, 자력으로 맞추지 못한대도 지원을 받아 최대한 싱크를 맞출 준비는 되어 있어야겠다. 포장이 잘 된 콘텐츠 프로덕트를 준비하자는 의미다.

  • 콘텐츠의 디지털화에 자원을 투자한다. 특히 레거시 미디어의 경우, 기사 생산의 리소스를 인쇄나 방송으로 측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집약된 콘텐츠를 디지털로 접했을 때도 저품질로 보이지 않도록 디지털 포매팅에 더욱 많은 리소스를 투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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