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어떻게 프로덕트로 바꿀 것인가? Talk 2020 Case study

미국 대선 얘기를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긴 한데, 4년에 한 번씩 맞는 선거 ‘대목’은 언론사들이 가장 눈부신 성과(와 처참한 실패)를 거두는 시기다. 얼마나 유연하게 청중에게 대처하는지, 얼마나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지, 그러면서 얼마나 정확하고 공익에 부합하는지가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다.

특히 광고 시장에 의존하던 저널리즘 생태계를 디지털 구독제로 이식하려는 시도가 메이저 트렌드인 미국에서는 각 언론사가 각자의 브랜드를 가장 잘 홍보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대선 보도가 공익을 위한 보도에 (당연히) 속하기 때문에 페이월이 있는 언론사라도 대선을 다루는 콘텐츠는 대부분 무료로 개방하기 때문이다.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각 언론사의 콘텐츠를 둘러보며 일종의 ‘맛보기 쇼핑’을 할 수 있는 기회로도 삼는다. 실제로 미국에선 대선 전후로 언론사들의 구독이 대체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며, 특히 그 중 성과를 거둔 언론사들의 구독은 큰 폭으로 증가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이번 대선은 대선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대선을 다루는 언론의 방식에서 눈여겨 볼만한 시도와 성취가 많았다. 오늘은 대선이라는 소재를 통해 콘텐츠가 아닌 프로덕트 생산까지 진출한 월 스트리트 저널(아래 WSJ)의 사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미 확보한 데이터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레거시 미디어에게 디지털 혁신의 좋은 예시가 되리라고 본다.


Talk 2020 : 그래서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더라

<Talk 2020>은 대선 기간에 WSJ가 공개한 프로덕트다. 대통령, 부통령 후보들의 발언을 검색할 수 있고 검색 결과는 100% 후보들의 직접 발언이다. 검색 결과에서 원하는 후보별로 필터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주제별 필터도 제공하고, 물론 기간별 필터도 제공한다. 무게감 있는 단어를 나와도 검색 결과가 잘 나오지만, 치킨 같은 별 의미 없어보이는 단어를 넣어도 검색이 잘만 걸린다. 검색 결과로 제시된 후보들의 발언은 한 단락씩 카드로 분리가 되어있는데, 이 카드를 떼어내서 소셜 미디어에 공유할 수 있다.

검색 결과는 이렇게 보이는 카드의 나열이다.

검색 결과는 이렇게 보이는 카드의 나열이다.

<Talk 2020>은 인터랙티브라거나, 리치 포맷이라고 부르는 콘텐츠와 구분이 모호한 점이 있긴 하지만 프로덕트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점은 모두 충족한다. 프로덕트를 별도로 구분짓는 명칭이 있고, 핵심 기능이 있으며, 사용자는 프로덕트를 사용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고 행동을 반복한다. 재밌는 점은 WSJ가 이 페이지를 스스로 ‘프로덕트’라고 칭했다는 점이겠다.

이 프로덕트의 기획은 꽤 이른 시점부터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WSJ는 작년 여름에 수행한 포커스 그룹 리서치를 통해 독자들이 재빨리 후보의 특정 발언을 찾아내고 이것을 공유하려는 욕구(“야, 봤냐? 진짜 이렇게 말했잖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언이란 것이 윤색되거나 적당히 편집된 게 아니라, ‘원본’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원본’을 믿을 만한 언론사가 제공해야만 믿는다는 점도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 그들에게는 이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다. 니먼랩과의 인터뷰에서 WSJ의 스토리 에디터인 베키 바워스는 다우 존스의 Factiva를 기반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실제 발언을 검색하는 사내 데이터베이스를 2019년부터 사용해 왔다고 밝힌다. WSJ는 이를 기반으로 <Talk 2020>이라는 프로덕트를 설계했다.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의 <Talk 2020>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우위를 인지할 것

명망 있고 신뢰도 높은 언론사의 기사들은 종종 나름의 로직을 가진 포털 검색 엔진이나 뉴스 어그리게이션 페이지에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포털 검색창은 흡사 홉스가 상상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상태다. 미디어의 미디어에 대한 투쟁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안에서 신뢰도 높은 기사를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검색 엔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로직을 개선하고 있지만, 독자들이 정말로 주목해야 할 퀄리티 높은 콘텐츠와 기사, 정보를 검색 엔진이 상위에 노출시켜 줄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수도 없이 쏟아지는 검색 결과들 사이에서 레거시 미디어가 돋보여 독자들이 그들을 따로 찾아오게 유인하려면 무엇이 필요한 걸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WSJ가 <Talk 2020>으로 훌륭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덕트는 WSJ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1. 방대한 데이터가 이미 축적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2. 독자들이 이미 들어봤을 법한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레거시 미디어는 신생 미디어를 월등히 앞지른다. 가령, 아무리 자본이 풍부하다고 해도 버즈피드는 <Talk 2020> 같은 프로덕트를 만들 수 없거나 만들어도 성공할 수 없다. 버즈피드는 프로덕트에 필요한 기사 소스들의 방대한 원문 스크립트를 처음부터 수집하거나 사와야 하고, 원문 스크립트를 확보해 프로덕트를 만들고 이를 공개했다고 해도 사용자가 이를 버즈피드의 다른 콘텐츠와 비슷한 결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신뢰도 높은 정보라고 인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예시를 한국화해보자면, KBS는 <Talk 2020>같은 프로덕트를 만들고 성공적으로 유행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지만 인사이트나 허프포스트코리아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비즈니스 용어를 조금만 빌려 표현하자면 WSJ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SWOT 분석을 정확하게 수행한 셈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강점만을 결합한 프로덕트를 시기적절하게 릴리즈했다.


무한한 재활용과 진보의 가능성

짧고 빠른 속보 기사는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쏟아진다. 속보 경쟁에선 레거시 미디어가 더 이상 유리하지도 않고 실시간 검색어 점유 경쟁에서는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보유한 브랜드의 가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레거시 미디어는 청중에게 얼마든지 다른 방식의 접근을 유도할 수 있다. 반드시 대선 같은 ‘대목’만 유효한 건 아니다.

한국은 매년 로이터 저널리즘 인스티튜트의 국가별 언론 신뢰도에서 굳건한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편이다. 나는 레거시 미디어들이 자신들의 가장 큰 장점인 신뢰도를 활용해 굳건한 정보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대신 이 신뢰도를 버려가면서 저품질 정보를 양산하는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청중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이 단순한 한 문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미디어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한 셈이다. 그러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월등히 갖춰져 있는 레거시 미디어는 더더욱 그렇다. 청중이 ‘편집되지 않은’ 정보를 원한다면 그것을 제공해주면 되는 일이다. 레거시 미디어는 바로 그 데이터 프로덕트의 생산자가 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프로덕트로 재가공하는 것은 재가공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실상 새로운 창조에 가까운 작업이긴 하다. 그렇기에 미디어가 확보하고 있는 데이터를 리소스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이를 활용한 프로덕트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전담 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기자들은 계속해서 그 리소스를 쌓아 나가야 하고 말이다.

사실 WSJ의 사례를 다룬 니먼랩의 아티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 프로덕트에 그들이 접근한 방식도, 포커스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WSJ에 ‘Product director’가 있다는 문장 하나였다. (정확히는 프로덕트 디렉터가 취재원 중 하나로 등장한다.) WSJ의 미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고색창연한 신문 브랜드를 미래의 데이터 프로덕트 그룹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현업 관계자들은 새로운 저널리즘이란 대체 무엇인지 머리를 싸매고 매 순간 고민하지만, 생각보다 요란한 해답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오래된 미래로 향하는 게 레거시 미디어의 해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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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카오, 구글은 미디어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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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미국 대선 보도가 우리에게 남긴 것: 데이터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