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회고: 왓챠피디아 연말결산

왓챠는 어떻게 일할까? 왓챠피디아 스쿼드는 어떻게 일할까? 종종 지인들에게 질문을 받으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다가 결국 일 얘기로 흘러간다. 어떻게 일하는 회사인지는 실제로 굴러간 일을 보면 안다. 그래서 오늘은 2021년 4분기에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왓챠피디아의 연말결산을 소개하고, 짧은 소회를 덧붙이려 한다.


프로젝트 요약

프로젝트 기간: 삽뜨기부터 릴리즈까지 6주

프로젝트 인원: PM 1인(본인), 디자이너 1인, 개발자 2인(서버 1, 웹 1)

플랫폼: Web


서론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시작은 갑자기 찾아온다. 물론 갑자기가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나는 작년 5월에 입사했고, 2020년의 연말결산과 같은 포맷으로 연말결산이 “알아서” “잘” 진행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알고보니 2020년이 특수한 케이스였던 것이다.) 그렇게 10월 말, 나는 왓챠피디아의 연말결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문제 정의

날카로운 기획은 날카로운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어떤 문제도 찾을 수 없고 어떠한 개선점도 생각해낼 수 없다면 그저 그런, 둥글고 밍숭맹숭한 결과물만 나온다. 즉, 좋은 기획의 시작은 문제 정의다. 나는 콘텐츠 소비 전후로 콘텐츠 추천 및 탐색 - 콘텐츠 기록 및 평가를 책임지는 서비스라면 당연히 한 해의 콘텐츠 여정을 요약하는 피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존에 왓챠피디아를 만들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왓챠피디아에서는 2019년까지 상, 하반기로 나누어 “왓챠 성적표”를 제공했다. 다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왓챠와 왓챠피디아는 같은 회사에서 같은 생태계를 공유하는 서비스지만, 엄연히 목적이 다른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성적표에 양 서비스의 내용이 혼재되어 있거나 특정 항목에서는 왓챠의 데이터만 활용하고 있었다. 즉, 기존의 연말결산에서는 콘텐츠 소비 여정을 전반적으로 책임지는 왓챠피디아만의 특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바이럴하기 좋은 이벤트성 피처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연말결산을 진행했을 때 왓챠피디아의 브랜드 인지도 등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둘째. 기존 성적표 방식의 UI/UX가 낡았다. 특히, 성적표라는 관념 자체가 콘텐츠의 소비량 및 평가량에 따라 유저의 백분위를 따지고, 상-하위를 나누는 뉘앙스를 줄 수 있어 연말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긍정적인 분위기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개인화라는 왓챠/왓챠피디아의 가장 큰 자산을 전면에 드러내지 못했다. 유저가 얼마나 오래 콘텐츠를 시청했고 얼마나 많이 콘텐츠를 평가했는지 통계를 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사용자를 위한 취향분석과 개인화를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꼭 맞는 콘텐츠를 찾아주는 일은 왓챠와 왓챠피디아만 할 수 있다. 기존의 성적표에서는 바로 이 핵심 포인트를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아, 왓챠피디아만의 특장점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의 새로운 연말결산을 기획하기로 했다.

즉, 새로운 연말결산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첫째. 왓챠피디아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둘째. 시각적인 퀄리티를 보장해 사용자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개인화된 콘텐츠를 메인 콘텐츠로 삼는다.


초기 기획

이렇게 방향을 잡고 나면, 이제 쭉 달려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 문제 정의와 해결 방식에 프로젝트 인원 모두가 공감한다면 프로젝트 중간중간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할 때도 목표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기 와이어프레임을 잡고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이를 공유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기획의 의도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이 기획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어떤 결과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두가 같은 지점을 바라보게 싱크를 맞춘다.

왓챠피디아 2021 연말결산 초기 와이어프레임. 극초기 컨셉은 “책”이었지만 조금 더 제네럴하게 가보자는 피드백을 받아 책보다는 앨범 자켓에 가까운 형태로 개인화 이미지를 완성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일정 안에 끝내는 게 당연하고 그래야 마땅하지만 종종 “불가피한” 예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겨지고 미뤄지는 일이 발생하는데, 연말결산처럼 반드시 시즌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프로젝트는 일정에서 그러한 여유가 없다. 이럴 때 리소스 산정을 잘못하거나 조금만 머뭇거리면 피를 보는 것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다. 결국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완성 직전까지 야근을 불태우게 되는 불상사를 막고 싶었다. 그래서 초반부터 리소스를 빡빡하게 점검하고, 최대한의 효율성과 퀄리티를 동시에 담보하기 위해 iOS, Android 네이티브보다는 웹뷰를 선택했고 웹의 max width도 500px로 제한했다. 모든 해상도와 기기에 responsive하게 대응해야 하는 스펙은 최대한 잘라냈다.

대신, 잘라낼 수 없는 것들은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것. 이럴 때에 함께 공유한 목표를 떠올린다. 첫째. 브랜드 인지도. 둘째. 훌륭한 시각적 경험. 셋째. 개인화. 기기 및 대응 해상도 스펙을 최소화한 반면 왓챠피디아 로고를 시각적으로 초반에 돋보기에 배치하고 애니메이션을 구현하는 방향(첫째 목표), 시각적으로 훌륭한 개인화 이미지의 매끄러운 구현(둘째&셋째 목표), 개인화에 따라 달라지는 아름다운 컬러 스킴(둘째&셋째 목표)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프로젝트의 다른 측면을 최대한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신, 각 목표까지 도달하는 길은 최대한 쉽고 빠르게 닦아낸다. 이를테면 연말결산의 개인화 이미지를 구현하는 로직은 프로젝트 2주차에 밑손질까지 마무리해 디자이너의 컴포넌트 작업과 서버 개발자의 로직 작업이 최대한 빠르게, 여러 번 일하는 일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정리되어야 하는 자잘한 스펙과 로직을 구체적으로 초반에 기재해 구현할 때마다 새로 찾아보거나 논의하는 일이 없게 방지했다.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디테일까지 들여다보려 할 때 지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PM/기획자는 그렇게 모두가 지치고 아, 다음에 생각할까? 라거나, 나중에 결정하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같은 식으로 어떤 이슈가 흐지부지되려 할 때 책임지고 그 부분을 채우는 사람이다.

피드백

1차 시안. desinged by Luna@Brand-Design squad at Watcha. 여기서 책 컨셉을 제외하기로 논의하고 더 볼드하게 + 블랙 컬러를 살려서 진행하기로 했다.

2차 시안. 색깔도, 폰트도, 구성요소도 더 볼드하게. 태그 조합에 따른 개인화 이미지는 책이 아닌 앨범 커버처럼 정방형의 이미지가 되었다.

두 번의 시안을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중점적으로 봤다. 첫째. 우리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훌륭히 달성하고 있는가. 둘째.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리소스를 더 요구하지 않는가. 이 관점에서 2차 시안에 있던 콘텐츠 가로 썸네일 캐루솔은 제외시켰다. 왓챠의 익스클루시브 및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외하곤 왓챠피디아의 DB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콘텐츠에는 고해상도의 가로썸네일이 존재하지 않아 가로 썸네일을 제공하려 한다면 콘텐츠 DB 단의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신, 세로 썸네일(포스터 형태에 가까운)으로 변경했다.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결과물이 좋으면 이건 모두 기분 좋은 아쉬움과 여담으로 남는다.

전체 페이지에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요소와 로직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를 초반에 마쳤기 때문에, 피드백 과정에서 이를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도 프로젝트 진행에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히지 않아 시안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컬러 등 부가적이지만 컨셉에 중요한 부분을 타협하지 않아도 됐다. 프로젝트 구성원 모두가 훌륭한 연말결산을 만들어내보겠다는 목적의식으로 꾸준히 달렸다. 개발과 디자인 작업이 쳐지지 않고 계속 페이스를 맞출 수 있도록 이틀-사흘 단위로 한번씩 짧은 콜or허들을 진행하고 고민되는 부분을 서로 공유했다. 엣지 케이스를 발견하는 즉시 이에 대응하는 기획과 로직을 추가했다. 이를테면 왓챠에서 한 계정에 여러 프로필을 만들어 사용하는 유저의 경우는 엣지케이스였는데 원래는 대응이 까다로워 아예 접근을 막았어야 옳지만, 해당 계정의 메인 프로필이 아닌 부프로필로도 이벤트페이지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왓챠피디아에 임시 프로필을 생성해주는 방식을 택해 최대한 대응했다.

그 결과, 12/15 한국 런칭 (일본 런칭은 크리스마스가 지나야 제법 연말 분위기라는 일본팀의 피드백 결과 12/27로 확정.) 일주일 전에 사내배포가 가능한 버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사내배포와 피드백

왓챠의 구성원들이 이제 더 이상 적은 수가 아닌 만큼, 사내배포는 일종의 알파(혹은 베타) 테스터 풀이다. 사내배포 버전으로 연말결산을 릴리즈해 개인화 로직이 잘 워킹하는지, 사용자들이 얼마나 흥미를 가지고 결과를 확인하는지 테스트해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지분을 차지해 결과가 중복되어 나오게 만드는 몇몇 로직의 요소를 제거하며 개인화 로직을 업그레이드했다. 그 결과, 처음에 기획이 의도한대로 무려 5천여가지의 표지 이미지를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연말결산 소개 카드뉴스의 일부.

릴리즈, 유지보수, 결과 트래킹

예정한 날짜에 연말결산 페이지를 오픈하고 추이를 꾸준히 트래킹했다. GA에 대응할 수 있는 로그를 심어두고 임프레션과 클릭률 등 기본적인 지표를 확인하고, 소셜 미디어 및 왓챠피디아 유저 커뮤니티의 반응을 기민하게 살폈다. 관련해 마케팅팀에서 크게 주시하고 힘써주셨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잘 모아서 프로젝트 인원에게 공유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은 내년에 비슷한 포맷으로 연말결산을 진행할 때 개선할 점으로 백로그화했다.

왓챠피디아의 2021 연말결산 프로젝트 성과지표는 대략 다음과 같다.

릴리즈 당일: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2위(1위는 BTS였으며, BTS의 AMA도 왓챠가 중계하였으므로 왓챠가 도메이네이팅한 기분 좋은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이벤트 페이지 방문 횟수:약 27만건(한국, 일본 합계)

이후 내년의 연말결산 담당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피그마와 노션 모두 문서화를 마쳤다.

TIL

1. 만고불변의 진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언제나 많은 인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목적을 잘 이해한 소수정예가 더 나을 때가 많다.

2. 소셜 공유기능의 “웹뷰”(네이티브 웹 말고) 구현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를 개선해 프로덕트에 반영할 방법을 올해 상반기에 찾아내 적용해볼 계획이다.

3. 명확한 목표에서 훌륭한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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